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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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지속의 지도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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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군지(경고 915.16G155)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강릉군지』〈經古 915.16G155〉에 수록된 지도이다. 읍지의 서두에 ‘강릉지도(江陵地圖)’라는 제목의 채색지도가 광곽(匡廓)에 맞추어 2면에 걸쳐 그려져있다. 지도에는 각면(各面)·사찰(寺刹)·사고(史庫)·누대(樓臺)·산천(山川)·진(津)·도로(道路) 등이 표시되어 있는데‚ 특히 노란색으로 표시된 도로망이 자세한 편이다. 산간지대인 서쪽을 위로 하고 바닷가인 동쪽을 아래로 하였다. 서쪽은 춘천(春川), 홍주(洪州), 횡성(橫城), 원주(原州), 북쪽은 양양(襄陽)의 경계, 남쪽은 평창(平昌), 정선(旌善)이 경계이다. 읍치에는 향교(鄕校)가 보이며, 지도의 중앙에는 보현사(普賢寺), 대공산성(戴公山城), 대관령(大關嶺), 서쪽에는 비로봉(飛爐峯), 동쪽에는 경포대(鏡浦臺) 등이 간략히 묘사되어있다. 이 지도는 『강릉부지(江陵府誌)』〈奎 10960〉수록 지도와 유사하지만, 진(津)을 비롯한 각종 지형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도로망도 다소 다르다.

  • 강릉부지(규 10960)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강릉군(江陵郡) 읍지를 일제강점기에 필사한 『강릉부지』〈奎 10960〉에 수록된 지도이다. 첨지형태(세로 27.2㎝×가로 37.8㎝)로 한 면에 모두 그렸다. 지도에는 각면(各面)·사고(史庫)·누대(樓臺)·산천(山川)·진(津)·도로(道路) 등이 표시되어 있고, 노란색으로 표시된 도로망이 자세한 편이다. 바닷가인 동쪽을 위로 하고, 산간지대인 서쪽을 아래로 하였다. 서쪽은 춘천(春川), 홍주(洪州), 횡성(橫城), 원주(原州), 북쪽은 양양(襄陽)의 경계, 남쪽은 평창(平昌), 정선(旌善), 삼척(三陟)이 경계이다. 읍치에는 향교(鄕校)가 보이며, 지도의 중앙에는 대공산성(戴公山城), 서쪽에는 사고(史庫), 비로봉(飛爐峯), 동쪽에는 경포대(鏡浦臺) 등이 간략히 묘사되어있다. 이 지도는 『강릉군지』〈經古 915.16G155〉수록 지도를 축약하여 모사한 듯하다.

  • 관동읍지(규12172)_강릉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규장각 소장『관동읍지』(奎12172) 6책에 수록된 강릉대도호부의 그림식 지도다. 강릉대도호부는 강원도의 강릉시 전체, 정선군의 임계면, 평창군의 대화면․도암면․방림면․봉평면․용평면․진부면, 홍천군의 내면, 동해시의 부곡동과 묵호동을 포함한 북쪽 지역에 걸쳐 있던 아주 큰 고을이었다. 지도의 아래쪽에 읍성과 함께 동헌(東軒)과 객사(客舍) 등 관아 건물이 빼곡이 표시된 고을의 중심지는 강릉시의 용강동․명주동․성내동 일대에 있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객사문이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어 있고, 현재는 강릉객사와 동헌 전체가 복원되어 있다. 고을 중심지까지 산줄기가 뻗어오는 서쪽을 위쪽에 배치하여 그렸으며, 아래쪽(東)에는 동해가 하늘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홍수 때 서쪽의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려온 모래와 진흙이 만(灣)의 입구를 막아 형성된 호수인 경포호(鏡浦湖)가 동해 바닷가에 보이고, 경포호의 풍경을 감상하는 누대(樓臺)인 경포대(鏡浦臺)가 표기되어 있다. 산은 봉우리 형식으로 그려져 있고, 길은 검은색 점선, 하천은 하늘색 실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가운데의 대관령(大關嶺)을 중심으로 아래쪽(東)은 동해 바다로 빠져나가는 연곡천과 남대천이 그려져 있다. 대관령 위쪽은 한강 유역에 해당된다. 그 중에서 내면(內面) 지역은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의 최상류 중 하나인 내린천 유역, 나머지는 남한강 유역의 최상류 지역에 해당된다. 서울에서 강원도의 평해를 잇는 큰길(大路)은 왼쪽 위의 원주(原州) 경계로부터 시작하여 대관령과 고을 중심지의 옆을 지나 다시 왼쪽(南)의 우계(羽溪) 방향으로 빠져나간다. 이밖에 문재(禿峙), 구름다리(雲橋), 진벌(珍富) 등 한자의 뜻과 비슷한 소리를 섞어서 기록한 것을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만 읽으면 당시에 불리던 이름의 소리와 달라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기봉)

  • 1872년지방지도_강릉부지도

    강릉부지도 江陵府地圖,조선시대 강릉부는 지금의 강릉시 사천면, 연곡면, 성산면 구정면, 강동면, 왕산면, 옥계면, 주문진읍, 평창군의 방림면, 대화면, 진부면, 도암면, 봉평면, 용평면, 내면, 정선군 임계면 그리고 동해시 묵호와 망상 일대까지 포괄했던 큰 고을이었다. 읍치는 지금의 명주동 일원에 있었다. 산지와 하천, 바다를 모두 청색으로 채색했는데 하천의 유로는 매우 과장되어 있다. 산지는 기암괴석을 강조하여 독립된 형태로 그렸는데 대부분 명칭이 빠져 있다. 읍성으로 둘러싸인 읍치에는 동헌과 객사 건물이 그려져 있고, 향교도 중요한 건물로 부각되어 있다. 滿月, 麒麟, 長嶺, 象王, 智爐 등 다섯 개의 臺로 이루어진 오대산의 모습이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대산에는 1606년(선조 39)에 설립된 史庫의 모습도 잘 나타나 있다. 홍선으로 도로를 표시하였는데 노변에 위치한 驛과 대관령을 비롯한 고개의 명칭도 기입되어 있다. 동해안의 바닷가 근처에는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경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경포대와 경포호의 모습도 보인다. 동남쪽의 安仁津에는 萬戶鎭이 설치되었으나 1490년(성종 21) 襄陽의 大浦로 옮겨졌다. 普賢寺 위쪽에는 산성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는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옥계면과 대화면에 개설된 장시를 통해 이 지역 상업활동의 일단도 엿볼 수 있다.

  • 해동지도(고대4709-41)_강릉부

    본래 穢國의 땅이었으며 639년(신라 선덕여왕 6)에 小京을 삼아 北濱京이라 하였으며 936년(고려 태조 19)에 東原京이라 하였다. 현재의 강원도 강릉시와 정선군의 임계면, 평창군의 봉평면, 용평면, 진부면, 도암면, 대화면, 방림면, 홍천군의 내면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강릉시 용강동, 교동, 임당동, 명주동 일대가 중심지가 된다. 성곽 안에 客舍, 衙舍, 倉이 있으며 성밖에 鄕校가 있다. 성곽은 현재 남문동 등의 지명으로 그 흔적을 알 수 있다. 백두대간이 이 지도의 가운데를 지나며 험준함을 표시하기 위하여 산을 중첩하여 그렸으며 雪岳山에서 이어져 내려왔음을 표시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이 지역의 分水界가 되기도 한다. 府의 앞을 흐르는 하천은 남대천이며 동해로 들어간다. 동해안의 호수(香湖, 鏡湖, 楓湖)는 海水에 의한 퇴적작용으로 형성된 潟湖이다. 鏡湖는 鏡浦湖로 그 앞의 정자인 鏡浦臺와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五臺山의 月精寺(평창군 진부면 동산리)는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보았으나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한 노승이 梵戒를 가르쳐주고 舍利를 주면서 봉안할 곳을 찾으라 하니 이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월정사 근처의 史庫는 1606년(선조 39)에 세운 것으로 朝鮮王朝實錄과 주요문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일제시대에 동경제국대학으로 옮겨지고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타고 그 터만 남았다. 서원으로는 松潭書院, 五峰書院이 있었다. 도로는 大倉驛, 安仁驛을 통해 남북의 삼척, 양양으로 통하는 길은 편리하였으나, 丘山驛, 橫溪驛, 木界驛, 高端驛, 大和驛, 芳林驛, 雲交驛 등을 거쳐 白頭大幹을 통과하는 길은 험준하였다.(이현군)

    *그외 강릉 관련 지도*
    대동여지도_13첩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