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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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지속의 지도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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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도읍지(규666)_청하

    규장각 소장 『慶尙道邑誌』(1832년 경, 奎 666)에 수록된 경상도 청하현 지도. 청하현은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송라면에 걸쳐 있었다. 읍치는 청하면의 덕성리에 있었다. 덕성리에 있는 청하읍성은 조선시대에 일반적이었던 邑城 형식 중 가장 이른 시기인 1368년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방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있으며, 주산-좌청룡-우백호-안산의 풍수적 명당 형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지도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현재의 송라면 한가운데를 흘러 동해로 빠져나가는 광천이 고을 전체를 감싸 안고 흐르는 것처럼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읍치 서쪽 경주의 땅이었던 죽장면과 경계를 이루는 鷹峯(매봉) 근처에서 발원하여 활처럼 휘어서 동해에 들어갈 뿐 고을 동남쪽까지 휘감지는 않는다. 왜 이렇게 표현했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우며, 그 밖의 내용은 청하현의 일반적인 모습과 비슷한 편이다. 아래쪽의 六峴은 순우리말 이름인 엿재에 대해 한자의 뜻+뜻 형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경주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고개였다. 그리고 別乃峴은 순우리말 이름인 별래재 또는 벼래재에 대해 한자의 소리+소리+뜻 형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흥해로 가는 가장 중요한 고개였다. 기타 위쪽의 桃李峴烽은 현재의 방석리 봉황산(110.2)에 있었으며, 桃李峴은 순우리말 이름인 도리재에 대한 한자 표기였다. (이기봉) (3.3장)

  • 영남읍지(규12173)_청하

    규장각 소장『嶺南邑誌』(1871년, 奎 12173)에 수록된 경상도 청하현 지도. 청하현은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송라면에 걸쳐 있었으며, 읍치는 청하면의 덕성리에 있었다. 청하읍성은 조선시대에 일반적이었던 邑城 형식 중 가장 이른 시기인 1368년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방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있으며, 주산-좌청룡-우백호-안산의 풍수적 명당 형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지도는 남쪽을 위쪽으로 그렸는데, 남쪽이 읍치까지 연결된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읍치의 주산이 남쪽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지형적 측면에서 볼 때 읍성까지 연결된 산줄기의 시작점인 鷹峯(매봉, 835m)을 비롯하여 서쪽(酉)이 높고 바닷가에 접한 청하읍성의 동쪽 지역은 동해안의 평지 중 가장 넓은 곳 중의 하나이다. 이 지도만을 놓고 보면 읍성 동쪽의 江城山이 鷹峯(매봉)보다 약간 작은 산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평지에 솟아난 150m 정도의 야산에 불과하다. 또한 德松․封松田과 함께 산 모양이 그려져 있지만 읍성 동쪽에서는 江城山 이외에 산이라 부를만한 곳을 찾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표현은 서쪽의 산줄기를 主山의 맥으로 보고 그것에 대응되는 동쪽의 案山을 설정한 풍수적 사고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왼쪽 아래의 達賢山은 月賢山으로도 표기하는데, 순우리말 이름인 다래산에 대한 서로 다른 한자 표기다. 達賢은 한자의 소리+소리 형식으로, 月賢은 뜻+소리 형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기타 아래쪽의 六峴은 순우리말 이름인 엿재에 대해 한자의 뜻+뜻 형식으로, 別乃峴은 별래재 또는 벼래재에 대해 한자의 소리+소리+뜻 형식으로, 桃李峴烽에서의 桃李峴은 도리재에 대해 한자의 소리+소리+뜻 형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기봉)

  • 해동지도(고대4709-41)_청하현

    청하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과 송라면을 포함하는 지역이었고, 읍치는 청하면 덕성리 일대에 있었다. 읍치 서쪽에 위치한 呼鶴山이 고을의 鎭山이다.읍성은 1427년(세종 9)에 縣監 閔 寅의 청에 따라 안동, 봉화, 풍기, 영천 등지의 장정들을 모아서 돌로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읍치 북쪽의 松羅?은 7개의 屬驛을 거느린 송라찰방역의 관아 건물이다. 송라관 위쪽에 보이는 鶴山書院은 1692년(숙종 18)에 세워서 李彦適을 봉안하였는데,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렸다. 학산서원 좌측에 위치한 寶鏡寺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절이다. 745년(신라 경덕왕 4)에 南岳門人 哲敏이 중수하였으며, 1023년(고려 현종 14)에 金堂塔을 세웠고, 1221년(고려 고종 8)에 圓眞國師가 사리탑과 사적비를 세웠다. 현재 원진국사비는 보물 제 251호 지정되어 있다. 보경사 왼쪽에 보이는 神龜山에 세 마리의 용이 웅덩이에 있는데 가뭄에 비를 빌면 응했다고 한다. 신귀산 좌측에 보이는 龍湫는 폭포가 내리질러서 깊은 못를 이루었는데, 그 속에 용이 산다 하며,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고 전한다. 해안 가에 보이는 釣鏡臺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앞에 있는 동해 바다가 거울같이 비춰 주므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金在完)

  • 1872년지방지도(규10512)_청하지도

    청하지도 淸河地圖, 청하현은 지금의 경북 포항시 청하면, 송라면 일대로 읍치는 청하면 덕성리에 있었다. 동으로는 동해 바다를 연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산줄기가 연이어 있는 작은 고을이다. 전체적으로 산줄기의 맥세를 강하게 부각시켜 표현한 점이 특징적이다. 고을의 진산인 呼鶴山에서 뻗어 내린 자락에 읍치가 이루어져 있는데 황색의 원내에 ‘邑’을 표기했을 뿐 관청의 건물들은 전혀 그리지 않았다. 원래 읍치에는 1427년(세종 9)에 현감 閔寅이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조한 성곽이 있었으나 이 시기에 이르러 거의 유실되었는데 지도에서도 東門里라는 지명만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북쪽에는 찰방역인 松羅道도 크게 표시되어 있다. 동쪽 해안의 介浦에는 ‘古萬戶基’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일찍이 이곳에 만호진을 두었으나 海門이 광활하여 항상 風患이 있었기 때문에 영일현 지경의 通洋浦로 이설하였다. 장시도 볼 수 있는데 읍장시와 館洞場市, 그리고 外三洞의 장시가 보인다. 관동장시는 원래 외삼동에서 3?8일장으로 개시되었는데 당시 8日市만을 館洞으로 移設했던 것이다. 관내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는 흑색의 쌍선으로 그렸는데 대로와 소로로 구분하였다.

  • 대동여지도_17첩1면

    지도 위의 지역은 현재의 경상북도 포항시, 경주시와 울산광역시의 일부에 걸쳐 있다. 남쪽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이 현재의 형산강이다. 이 지도에는 하류의 兄山 북쪽에 兄江이라 적혀 있는데, 형산강 명칭의 연원이 된 곳이다. 조선시대에 형강 또는 형산강은 이 부분에서만 주로 사용하던 명칭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경주 읍치 부근의 西川처럼 다르게 불렀다. 형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역을 현재 영일만으로 부르고 있으며, 해안에는 포항시 명칭의 근원이 된 浦項倉이 표시되어 있다. 포항창 부근의 섬들은 본 지도처럼 진짜 바다 한가운데 있다기보다는 형산강과 냉천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 정도이다. 포항제철소와 주거지를 만들면서 모두 메워져 섬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아래쪽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현재의 울산만으로 빠져나가는 태화강의 지류인 동천강과 대곡천이다. 왼쪽의 仍甫驛이 표시된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경주에 속해 있었지만 현재는 울상광역시 울주군 두동면과 두서면으로 편입되어 있다. 그 오른쪽 방면의 古城은 신라 성덕왕(702-737) 때 일본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지금의 울산광역시 북쪽과 경주시 외동읍 사이에 동서로 길게 쌓았던 長城이다. 경주의 읍치 부근에는 신라의 고도답게 평지에 4개의 성곽이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도 그 위치가 확인되고 있는 것은 月城과 明活城에 불과하다. 金城과 滿月城은 확인되고 있지 않으며, 조선시대의 지리지에도 애매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한 明活城은 평지성이 아니라 산성이며, 狼山 동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경주 읍치 부근에서 발견되는 仙桃山, 南山, 富山, 兄山 등에 보이는 산성은 모두 신라 때의 것으로서 조선시대에는 모두 사용되지 않았다. 경주 읍치 북쪽의 掘淵은 北川과 西川이 만나는 지점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동해안에는 甘浦의 위치가 잘못 표시되어 있다. 실질적인 위치는 利見臺 약간 위쪽에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 두 지명은 《청구도》에는 없었던 것인데 《동여도》에서 삽입하면서 위치를 잘못 비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기봉)

  • 청하현읍지(규10813)

    1899년에 편찬된 경상북도 『淸河縣邑誌』 〈奎 10813〉에 수록된 지도. 남쪽을 위로 그렸고, 동서로 길게 배치한 회화식 지도이다. 지도 중앙에 읍치를 표시하고, 진산(鎭山)인 호학산(呼鶴山)을 비롯하여 신구산(神龜山), 내연산(內延山), 응봉(鷹峯), 강성산(江城山) 등 청하현에 소재한 산과 고개들을 곳곳에 그려 넣었다. 사찰로는 내연산에 위치한 보경사(寶鏡寺)를, 역으로는 송라역(松羅驛)을 표시하였다. 동쪽 해안으로 바다를 그려 넣었고, 해안 가까이에 위치한 도리현봉수(桃李峴烽燧)도 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