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

지리지 열람

홈 > 지리지열람 > 상세보기

서명 : 강릉군지(江陵郡誌)

정보테이블
표제어 강릉군지(江陵郡誌)
정보테이블
내용

1899년(광무 3)경 편찬된 강릉군(江陵郡) 읍지이다.
조선시대의 강릉부는 강릉시와 정선군의 임계면, 평창읍·미탄면을 제외한 평창군, 홍천군의 내면에 해당하며 읍치는 강릉 시내 성내동과 용강동 일대에 있었다. 고을의 한가운데를 백두대간이 지나가며 동서를 넘나드는 고개로는 대관령(大關嶺)이 있다. 이 고개를 중심으로 영동·영서로 나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를 살펴보면, 강릉은 본래 예국(濊國)인데, 철국(鐵國) 또는 예국(蕊國)이라고도 한다. 한(漢) 무제(武帝) 원봉 2년 장수를 보내, 우거(右渠)를 토벌하고 사군(四郡)을 정할 때에, 이 지역을 임둔(臨屯)이라 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하서량(河西良)이라 하였다 하슬라주(何瑟羅州)라고도 하였다. 신라 선덕왕은 소경(小京)을 설치하여, 사신(仕臣)을 두었다. 무열왕 5년 이 지역이 말갈(靺鞨)과 연접하였다 하여 주(州)로 만들고, 도독(都督)을 두어서 진무하고 지키도록 하였는데, 경덕왕 16년 명주(溟洲)라 고쳤다. 고려 태조 19년 동원경(東原京)이라 불렀고, 성종 2년 하서부(河西府)라 하였다. 성종 5년에는 명주도독부라 바꾸었으며, 성종 11년 목(牧)이 되었다. 성종 14년 단련사(團練使)라 하였다가 방어사(防禦使)라 개칭하였다. 원종 원년 공신(功臣) 김홍취(金洪就)의 고향이라 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하였고, 충렬왕 34년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부로 만들었다. 공양왕 원년 대도호부로 승격하였다. 조선에서는 세조대 진(鎭)을 설치하였다.
본서의 ‘건치연혁(建置沿革)’에는 정묘임인(正廟壬寅: 1782)에 현감으로 강등되었다가 순묘신유(純廟辛酉: 1801)에 신원(伸冤)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조실록』에는 이미 정조 15년(1791)에 대도호부로 복구되었음이 확인된다. 이후 고종 33년(1896) 지방제도 개편으로 강릉군(江陵郡)이 되었다.
본 읍지는 1899년(광무 3) 대대적으로 추진된 읍지 상송령으로 편찬되었다. 이 자료는 대한제국의 통치체제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지방의 행정정보를 새로이 확보하기 위하여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테이블
관련자료 『관동읍지(關東邑誌)』〈奎 12172〉, 『강릉부지(江陵府誌)』〈奎 10960〉
정보테이블
관련정보
정보테이블
대표이미지
정보테이블
집필자 김백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