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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강계부사례(江界府事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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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 강계부사례(江界府事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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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856년(철종7) 편찬된 평안도 강계도호부 사례(事例)이다. 강계부사 신종익(申從翼)이 편찬하였다.
현재 책표지에 볼펜 글씨로 적힌 〝강계부사례이정기(江界府事例釐整記)〞는 책 제목이 아니라 책머리에 실린 서문 제목이다. 책 제목은 규장각 목록대로 ‘강계부사례(江界府事例)’가 맞다. 본 책은 책 뒷부분에 강계부사의 수결(手決)이 있는 원본이다. 그런데 수결로 사례가 일단락되지 않고, 그 뒤에 다시 첨록이 붙어 있다. 첨록은 1861년에 행해졌고, 앞의 원본에도 세주로 추기한 부분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강계부의 영역은 본래의 강계와 폐사군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1869년에 폐사군 지역이 분리되었다. 폐사군 이외의 강계는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자강도 강계시에 해당하며, 일부 지역이 자강도의 만포시, 전천군, 장강군으로 편입되었다. 폐사군 지역은 현재 자강도 중강군․자성군․화평군, 양강도 김형직군에 해당한다.
강계는 옛날에는 읍치가 없이 독로강(禿魯江)으로만 불리다가 1361년(공민왕10)에 만호(萬戶)를 두었으며, 1403년(태종3)에 강계부로 승격하였다. 강계는 군사적 요충지로 1692년(숙종18)에 부사에게 강변우방어사(江邊右防禦使)를 겸하게 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 때 강계군이 되어 강계관찰부 소재지가 되었다. 1896년 13도제 때 평안북도에 속하였으며, 1949년 북한이 자강도를 설치하면서 자강도에 속하였다.
본 책은 필사본이며 1책 201장이다. 책의 구성은 크게 보아 서문, 목록, 원본, 첨록으로 되어 있다. 원본은 초반은 일반 읍지와 같이 건치연혁(建置沿革) 등을 두었다. 호정총(戶丁揔) 항목 이하가 본격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책머리에 〝강계부사례이정기(江界府事例釐整記)〞라는 서문이 있어 편찬자, 편찬동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편찬자는 강계부사 신종익(申從翼)으로, 그는 ‘그동안 많은 사례가 있었지만 현실에서 준용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새로 정리하였다.’라고 하였다.
본 책은 사례인 만큼 강계의 재정운영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재정 수입은 둔전세, 화전세, 전세의 읍 재정분, 순영 획하분, 정전(丁錢), 민고(民庫) 식리전, 환곡 모조, 방고전(防雇錢), 각종 상세(商稅) 등으로 구성되었다. 둔전세는 폐사군 지역이 18세기 말부터 개척되기 시작하자 둔전(屯田) 명목을 설치하여 거두는 세였다. 정전(丁錢)은 15세〜69세의 장정에게 1냥씩 부과하여 진공 삼(蔘)을 마련하는 비용 등으로 사용하였다. 방고전(防雇錢)은 원 군사에게 매명 4냥씩 받아 포수․발군․파군․방군․하인 등의 고전(雇錢)으로 사용하였다. 재정 지출은 강계부 각 직임의 일삭반료식례(一朔頒料式例), 각진 관원을 대상으로 한 각진방료식례(各鎭放料式例) 등을 통해서 재정 지출의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원본의 뒷부분에는 각 기관에서 그동안 보관해왔던 각종 절목의 목록을 실었다. 이러한 절목에 근거하여 본 사례가 만들어졌으니 준용할 것을 약속하는 뜻으로 실은 것으로 생각된다. 또 마지막에 부사의 수결과 함께 본 사례를 준용해야 할 각 직임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본 사례가 단순히 부사가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지켜야할 약속이기 때문에 그들의 명단도 함께 기록한 것이다.
본 책은 19세기 중반 강계의 재정 운영 사례를 담은 것으로서, 당시의 재정 운영 원칙, 그와 같은 원칙을 마련해 온 과정, 당시의 재정 규모, 재정 운영에 관계되는 기관․직임, 민들의 부담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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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강계군읍지』〈奎 10951〉, 『강계읍지』〈想白古 915.18-G154〉‚ 『강계지』〈奎 10948〉‚ 『강계지』〈奎 17506〉, 『칠군도경(七郡圖經)』〈想白古 915.18-C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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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