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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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강계지(江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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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 강계지(江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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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839년(헌종5) 편찬된 평안도 강계도호부 읍지를 후대에 증보한 책이다. 본 책은 필사본이며, 2권 1책 125장으로 되어 있다. 증보한 시기는 맨 뒤의 선생안 이외의 부분은 1877년경 증보되었고, 선생안은 1908년경 기사가 추가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강계부의 영역은 본래의 강계와 폐사군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1869년에 폐사군 지역이 떨어져 나갔다. 원 강계는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자강도 강계시에 해당하며, 일부 지역이 자강도의 만포시, 전천군, 장강군으로 편입되었다. 폐사군 지역은 현재 자강도 중강군․자성군․화평군, 양강도 김형직군에 해당한다.
강계는 옛날에는 읍치가 없이 독로강(禿魯江)으로만 불리다가 1361년(공민왕10)에 만호(萬戶)를 두었다. 1403년(태종3)에 강계부로 승격하였으며, 1692년(숙종18)에 부사가 강변우방어사(江邊右防禦使)를 겸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 때 강계군이 되어 강계관찰부 소재지가 되었다. 1896년 13도제 때 평안북도에 속하였으며, 1949년 북한이 자강도를 설치하면서 자강도에 속하였다.
책머리와 말미에 서문과 발문이 실려 있어 강계읍지 편찬 전통을 알려준다. 책머리에 실린 ‘증수강계읍지서(增修江界邑志序)’는 1839년 강계읍지를 편찬한 부사 이탁원(李鐸遠)이 쓴 서문이다. 책 뒷부분에 수록된 ‘강계지발(江界志跋)’은 1696년 강계지를 편찬한 부사 이인징(李麟徵)이 쓴 발문이다.
이탁원이 편찬한 강계읍지의 원형을 규장각 소장의 『강계지』〈奎 17506〉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다. 본 읍지와 『강계지』〈奎 17506〉를 면밀히 비교하면 1839년 이후 증보된 부분을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 1839년 본을 그대로 베끼고, 일부 항목 말미에 추기하여 변화상을 반영하였다. 가령 서원 항목에서 〝(경현서원은) 신미(辛未. 1871년)에 조령으로 훼철되었다.〞와 같이 단서를 달아 변화를 반영하였다. 본 읍지를 증보한 1877년경은 이미 강계로부터 자성군후창군이 분리된 후인데도 이와 같은 사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강역․부방(部坊)․둔전(屯田)․방수(防守) 항목은 자성군과 후창군으로 이속된 지역을 여전히 포함하여 기술하였다.
본 읍지는 이전 읍지의 서문․발문을 수록하여 강계읍지의 편찬 전통을 전해준다. 1839년 강계읍지를 편찬한 이탁원이 ‘강계의 대정은 공삼(貢蔘)과 방호(防胡)이다. 연강(沿江) 3채(寨)에서는 싸움이 없는 해가 없다.’라고 하였듯이, 강계의 가장 큰 업무는 인삼 진공과 국경 방어였다. 본 읍지는 강계가 그와 같은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지 자세하게 전달한다. 또 책 말미의 읍선생안은 고려후기 위관(委官)으로부터 대한제국기 군수까지 역대 강계 관원의 명단을 수록하여 그들의 출자(出資), 이부임 시기․사유 등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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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강계군읍지』〈奎 10951〉, 『강계부사례』〈奎 5457〉, 『강계읍지』〈想白古 915.18-G154〉‚ 『강계지』〈奎 17506〉, 『칠군도경(七郡圖經)』〈想白古 915.18-C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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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