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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강계군읍지(江界郡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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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 강계군읍지(江界郡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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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899년(광무3) 편찬된 평안북도 강계군 읍지이다.
강계군은 북한의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자강도 강계시에 해당한다. 강계군의 일부 지역이 자강도의 만포시, 전천군, 장강군으로 편입되었다.
강계는 옛날에는 읍치가 없이 독로강(禿魯江)으로만 불리다가 1361년(공민왕10)에 만호(萬戶)를 두었으며, 1403년(태종3)에 강계부로 승격하였다. 강계는 군사적 요충지로 1692년(숙종18)에 부사에게 강변우방어사(江邊右防禦使)를 겸하게 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 때 강계군이 되어 강계관찰부 소재지가 되었다. 1896년 13도제 때 평안북도에 속하였으며, 1949년 북한이 자강도를 설치하면서 자강도에 속하였다.
본 읍지는 강계군에서 1899년(광무3)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여 중앙에 올린 원본이다. 채색지도 2장이 첨부되어 있다. 1장은 책머리에 실었는데, 1899년 당시에 작성한 것이다. 다른 1장은 별책 형태로 실었다.
책머리의 지도는 읍치, 면과 진(鎭), 누정․절, 도로 등을 나타내었다. 별책으로 실은 지도에는 〝평안도강계부지도(平安道江界府地圖)〞라는 제목이 달려 있으며, 읍치․면(面)․진(鎭)․참(站)․창(倉)․봉대(烽臺)․방소(防所)까지 세밀하게 표시하였다. 본 지도는 제목과 기재된 정보를 종합할 때 1869년 강계로부터 자성군과 후창군이 분리된 이후 그리고 1895년 지방 제도 개혁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도만 하더라도 다른데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많은 지명정보와 위치정보를 싣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본 읍지는 이미 지방제도․군사제도가 변화가 된 다음에 작성되었기 때문에, 각 항목의 맨 뒤에는 〝지금은 폐지되었다.〞라는 단서를 밝힌 경우가 많다. 강계는 조선후기에 평안도에서 평양 다음으로 읍세가 큰 고을이었으며, 1869년 자성군과 후창군이 분리되기 이전에는 평안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고을이기도 하였다. 또한 청북우방어영(淸北右防營)이 설치되었고, 압록강변에 파수․방수․봉수처가 빽빽이 들어선 국경방어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본 읍지는 한편으로는 이전 강계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변화된 당시의 모습을 반영하였다. 청북우방어영(淸北右防營) 때의 현판은 떼어졌고, 비장청(裨將廳)․연방(椽房)․교방(敎坊)․관노청(官奴廳) 등 많은 기관이 없어졌다. 대신에 순교청, 향장소(鄕長所), 서기청, 사용사동청(使傭使童廳), 우체사(郵遞司) 등이 새로 생겼다. 본 읍지는 이와 같은 1899년의 강계 상황을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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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강계읍지』〈奎 4224〉, 『강계부사례』〈奎 5457〉, 『강계읍지』〈想白古 915.18-G154〉‚ 『강계지』〈奎 10948〉‚ 『강계지』〈奎 17506〉, 『칠군도경(七郡圖經)』〈想白古 915.18-C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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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