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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강계지(江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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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어 강계지(江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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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1839년(헌종5) 편찬된 평안도 강계도호부 읍지이다.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다.
강계부의 영역은 본래의 강계와 폐사군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1869년에 폐사군 지역이 분리되었다. 원 강계는 현재의 북한 행정구역으로는 자강도 강계시에 해당하며, 일부 지역이 자강도의 만포시, 전천군, 장강군으로 편입되었다. 폐사군 지역은 현재 자강도 중강군․자성군․화평군, 양강도 김형직군에 해당한다.
강계는 옛날에는 읍치가 없이 독로강(禿魯江)으로만 불리다가 1361년(공민왕10)에 만호(萬戶)를 두었으며, 1403년(태종3)에 강계부로 승격하였다. 강계부는 군사적 요충지로 1692년(숙종18)에 부사가 강변우방어사(江邊右防禦使)를 겸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 때 강계군이 되어 강계관찰부 소재지가 되었다. 1896년 13도제 때 평안북도에 속하였으며, 1949년 북한이 자강도를 설치하면서 자강도에 속하였다.
본 읍지의 편찬 시기는 본 읍지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강계지』〈奎 10948〉와 면밀히 대조하여, 1839년 강계부사 이탁원(李鐸遠)이 편찬한 ‘강계읍지’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본 읍지는 19세기 전반의 강계의 읍세와 위상을 잘 보여준다. 강계는 평안도에서 평양 다음으로 큰 고을이었다. 강계는 폐사군 지역을 아우르고 있었는데, 이 지역이 18세기말부터 개척되기 시작하여 둔전(屯田)이 설치되고 방면으로 편제되었다. 부방(部坊) 항목에 따르면, 1839년 강계는 폐사군의 방면(坊面)을 포함하여 35개면으로 편제되었다. 또한 강계는 국경방어의 요충지로서 청북우방어영(淸北右防營)과 11개의 진보가 설치되었으며, 압록강변에는 파수․방수․봉수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본 읍지는 강계민이 지고 있던 각종 부담을 잘 보여준다. 강계는 다른 압록강변 7읍과 함께 전세의 1/3을 감면 받았고, 전세와 별수미 모두 관향(管餉)에 회록하였다. 때문에 환곡의 수량이 많아 영북(嶺北)과 영남(嶺南)의 환곡을 상호 이전하는 폐단이 컸다. 군역은 본부와 진보의 각색 군역이 무거웠기 때문에 중앙에 군포를 상납하지 않았다. 강계민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은 진공(進貢) 삼(蔘)이었다. 각종 폐단을 이정하는 조처가 계속 취해져 1830년부터 강계부는 15세에서 69세의 장정에게 1냥씩 부과하여 내국․호조 등에 진공하는 삼을 마련하였다. 군역도 1825년부터는 원 군액에게 3냥씩 부과하여 이로써 장정을 고용하여 파수․방수 등의 임무에 동원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본 책은 상권은 강계의 사회․경제․군사 상황을 충실히 담았고, 하권은 고사(古事), 이적(異蹟), 사군창혁(四郡剏革), 사환(仕宦), 효자(孝子), 충신(忠臣), 열녀(烈女), 문학(文學) 등 항목을 통해서 강계의 문화 역사를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본 읍지는 1839년에 편찬된 읍지로서 그동안의 강계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편찬되었기 때문에 18세기 말〜19세기 전반의 강계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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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강계군읍지』〈奎 10951〉, 『강계부사례』〈奎 5457〉, 『강계읍지』〈想白古 915.18-G154〉‚ 『강계지』〈奎 10948〉‚ 『칠군도경(七郡圖經)』〈想白古 915.18-C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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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선경